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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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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변호사회 발전 견인차’ 제4·5대 회장 이완근 변호사

2020-04-08


 

 

서울 출신인 이완근(45·사법연수원 33기·사진) 한국사내변호사회 회장은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남 영동 지역이 개발되기 전, 곳곳이 공터와 논이던 서초동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초등학교 때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했다. 1980년대의 과천은 지금과 달리 드넓은 논이 많아, 친구들과 논에서 개구리를 잡고 산에서 칡을 캐고는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회장은 중학교 시절 서울로 돌아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친구를 만났다. 

 

연수원 33기로 수료 후

공익법무관 거쳐 율촌 입사

 

"중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하기는 했지만 조금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제게 '좀 더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늘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외향적인 성격이였죠. 그 말을 듣고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시도가 쌓이다보니, 어느새 친구들과 교류하는 것이 어렵지 않게 여겨졌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내면의 벽이 허물어졌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에는 당시 유행하던 롤러장을, 고등학생 때는 볼링장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1994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선·후배, 동기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방학 때는 강릉, 대구, 부산 등 전국 곳곳에 있는 친구들 집을 찾아 방문했고, 동아리 활동이 궁금해 '법대 신문사' 활동도 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우연히 방문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문화충격을 느끼기도 했다. 

 

변호사로서 미래 불안감에

로스쿨 전임교수로 전직

 

"1997년 지도교수이신 호문혁 교수님을 따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해외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영어를 잘 모르니 외국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나 다름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체류 3일 만에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말이 안 통해 신고와 보험처리 과정 전반에서 곤란을 겪었죠. 그때 영어의 필요성을 절감해 한국에 돌아와 바로 영어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익힌 언어가 지금까지도 변호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그는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4년 3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에서 동기로 만난 이유경(44·33기) 변호사와는 연수원 졸업 후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법무법인 로고스에서 근무하는 이 변호사는 뛰어난 실력으로 로펌 안팎에서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회장은 공익법무관 시절을 거쳐 2007년 법무법인 율촌에 입사했다. 율촌 부동산 송무그룹에 합류해 박주봉(56·23기), 염용표(48·28기) 변호사 등과 함께 일했다. 그는 청년 변호사 시절 변호사로서의 미래와 진로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기업법무 경험하고 싶어

KCC 사내변호사로 새 출발

 

"전신전령(全身全靈)을 다해 변호사가 됐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있는데, 이 과정을 거친 뒤 어떤 변호사가 될지를 가늠하기 힘들었습니다. 로펌에서 지금 변호사 생활의 근간이 될 가르침들을 많이 얻었지만, 앞으로 나만의 커리어를 개척해야 된다는 고민도 상당했죠.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는 IMF 이후라 관련 사건도 많았고 기업 인수·합병(M&A), 해외투자 등 분야에서 법률수요가 폭증했습니다. 사내변호사의 경우에도 임원급 변호사들이 없어 승진의 여지가 열려있었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미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은 곳곳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청년변호사들이 느끼는 막막함과 불안은 그때보다 더욱 크겠죠. 이런 고민과 생각들이 지금 한국사내변호사회의 사업을 기획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됐죠."

 

그는 율촌 생활을 정리하고 2009년 아주대 로스쿨에서 전임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호문혁 교수의 제자로 석·박사 과정을 거친 경험을 살려 로스쿨과 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민사소송법을 가르쳤다. 이 때의 경험을 통해 법학과는 물론 로스쿨 교육 과정과 방식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를 갖게 됐다.

 

그리고 그는 2015년 진로를 바꿔 (주)KCC 사내변호사로 입사했고 현재는 (주)오에스비씨에 있다. 로펌에서 다룬 기업법무를 직접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컸다.

 

낯선 ‘컴플라이언스’ 개념 도입

 새로운 기업 문화로

 

"당시 기업 내 사내변호사의 영역이 활발하게 확장되던 시기였고, 기업법무 사건을 다루며 배운 내용을 직접 현장에서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펌에서 제가 받았던 질문들이 왜 로펌으로 오는지, 변호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진짜 니즈(needs)가 무엇인지를 체감하며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는 사내변호사로서 일하며 '컴플라이언스 셋업(Compliance Set-up, 준법경영 시스템 구축)'을 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컴플라이언스란 '새로운 시스템을 회사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기업 경영의 필수적 요소’로

받아들여 보람

 

"불과 5년 전인 2015년만 해도 컴플라이언스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인권 경영, 기업의 사회 공헌 등이 강조되는 경영 트렌드 변화와 맞물려 겨우 소개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죠. 컴플라이언스가 낯선 회사 구성원들을 상대로 효과를 설득하고 시스템을 변경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컴플라이언스는 마치 예방의학처럼 회사에 발생가능할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종식시킵니다. 그래서 컴플라이언스 담당자에게 가장 필수적인 역량은 '의사소통 능력'과 '회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입니다.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조직원 한명 한명을 설득해야 합니다. 요즘 컴플라이언스가 기업 경영의 필수적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며, 사내변호사 동료들의 숨은 노고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상세 내용은 하단의 출처 참고

출처 :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160651&kind=AE